가을 운동회 날, 민수의 이야기
1977년 여름, 국민학교 5학년 민수는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1년에 한 번뿐인 운동회 날.
그 시절 운동회는 단순한 학교 행사가 아니었다. 가족 소풍이었고, 동네 축제였고, 아이들에게는 작은 인생의 무대였다.
민수네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다. 뭐, 사실 그 시절 누구네 집이 넉넉했겠나.
뚱뚱한 아이는 전교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했고, 도시락엔 보리쌀이 반이나 섞인 혼식이 기본이었다.
버스로 두세 정거장 거리도 아이들은 걸어 다녔다. 다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날마다 뛰어놀고, 배고프면 물 마시고, 다시 뛰었다.
하지만 운동회 날만큼은 달랐다.
그날 아침, 엄마는 일찍 일어나 김밥을 말았다. 냄새로만도 배부른 김밥.
소풍 가듯 가방 하나에 김밥, 수건, 물통을 챙겨 들고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
민수는 체육복을 입고, 운동화 끈을 바짝 조였다.
청군 백군 나누어서 형재 자매도 이날은 나누어지기면 서로 우리 편이 이길거야 하면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았기에, 서로 서로 하나 같이 응원하러 온 가족이 둘셋씩 되었다.
돗자리가 운동장 한쪽에 줄지어 펼쳐졌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확성기 소리에 운동회의 시작이 알렸다.
민수가 가장 기대했던 건 합지박 터트리기였다.
오재미를 들고, 눈은 상대편 박을 노렸다.
“하나, 둘, 셋!”
아이들의 오재미가 날아가고, 형형색색의 박이 퍽 소리와 함께 터질 때, 온 운동장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가난하지 않았고,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김밥 한 줄, 엄마의 미소, 햇볕에 그을린 친구들의 얼굴, 그리고 운동장에 울려 퍼지던 응원 소리.
그 모든 것이 민수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 시절은 분명 힘들었지만, 그 안엔 지금보다 더 깊은 따뜻함이 있었다.